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키친글라 방문 실험 날! 원래 크리스마스 디너를 계획했었지만, 사정상 미뤄졌었다. 하지만 늦어진 만큼 더 큰 기대를 품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생 맛집’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연 키친글라가 나에게도 그런 영광을 안겨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맛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 지금 시작한다.
공항에서 가까운 위치 덕분에 렌터카를 수령하고 곧장 키친글라로 향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은은한 조명이 감싸는 외관이 눈에 띈다. 톤 다운된 외벽에 부착된 “Gla”라는 심플한 간판은 마치 비밀스러운 실험실로 향하는 문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온몸을 감쌌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은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마치 잘 꾸며진 친구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편안함 속에서라면 미각은 더욱 예민하게 깨어날 것이다.
자리에 앉자, 직원분께서 메뉴판을 가져다주시며 각 메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셨다. 메뉴판을 훑어보니, 평소에 접하기 힘든 독특한 조합의 요리들이 눈에 띄었다. 고민 끝에, 수비드 문어 스테이크와 본메로우 리조또, 그리고 라구 파스타를 주문했다.
가장 먼저 식전 빵이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이 독특했는데, 마치 오메기떡이나 시루떡을 연상시키는 질감이었다. 빵 자체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과 고소함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탄수화물은 식욕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는데, 아마추어 미식가들은 식전 빵을 과다 섭취하여 메인 요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나는 프로다. 이 정도의 탄수화물은 가볍게 에피타이저로 소화해낼 수 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비드 문어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눈으로 먼저 스캔을 시작했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서 갓 꺼낸 듯, 표면은 아름다운 갈색을 띠고 있었고, 그 위에는 신선한 채소가 곁들여져 있었다.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 흔적이 역력하다.

조심스럽게 칼을 들어 문어를 썰어보니, 놀랍도록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입안에 넣는 순간, 문어 특유의 쫄깃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푸딩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이것이 바로 수비드 공법의 마법일까?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된 문어는 단백질 변성이 최소화되어 놀라운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곁들여진 감자 퓌레는 문어의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다음은 본메로우 리조또 차례. 뼈 속의 골수를 활용한 리조또라니, 듣기만 해도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듬뿍 느껴지는 메뉴다. 뽀얀 리조또 위에 큼지막한 본메로우가 떡 하니 올려져 있는 모습은 마치 웅장한 산봉우리를 연상시켰다.

본메로우를 긁어 리조또와 함께 먹으니, 입안 가득 퍼지는 녹진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글루타메이트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극대화된 느낌이랄까? 리조또의 쌀알은 적당히 씹히는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본메로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듯했다. 마치 한 편의 교향곡처럼, 다채로운 맛과 향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지막으로 라구 파스타. 토마토 소스와 다진 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만든 라구 소스는 이탈리아 가정식의 대표적인 메뉴다. 키친글라의 라구 파스타는 24시간 이상 저온에서 끓여 깊은 풍미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파스타 면은 알 덴테(al dente)로 완벽하게 삶아져, 씹을 때마다 기분 좋은 탄력이 느껴졌다. 라구 소스는 토마토의 산미와 고기의 풍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특히, 파스타 위에 뿌려진 치즈는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해,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몸에 행복감이 가득 찼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전달하고 행복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키친글라에서의 식사는 그 효과를 극대화해, 나를 행복한 미식 실험의 성공적인 피험자로 만들어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방문객의 리뷰처럼,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식사 분위기를 다소 해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위생 문제에 대한 논쟁은 음식점의 청결 유지를 위해 불가피할 수 있지만, 손님들이 식사하는 공간까지 소리가 전달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친글라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맛있는 음식, 아늑한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 이 삼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잊지 못할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기념일에 방문한다면 더욱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소개팅을 하고 성공했다는 후기도 있지 않은가?

다음에는 부르게리타, 만조 리조또, 뇨끼 등 다른 메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특히, 감자 뇨끼에 블루치즈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어떤 맛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샘이 자극된다. 그리고 키친글라 하이볼도 꼭 마셔봐야겠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만든 칵테일로, 알코올 도수가 낮아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키친글라에서는 어떤 특별한 하이볼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키친글라 방문은 성공적인 미식 실험이었다. 맛있는 음식은 물론,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제주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키친글라는 반드시 다시 들러야 할 곳 1순위로 등극했다.
돌아오는 길, 문득 ‘음식 맛은 과학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식재료의 화학적 성분, 조리 과정에서의 물리적 변화, 그리고 뇌의 반응까지,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맛은 단순히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추억, 감정,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다. 키친글라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키친글라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되새기며, 다음 실험 장소를 물색해야겠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은 많다. 나의 미식 탐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