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빵과 칼국수로 유명한 도시라는 말을 들은 것이 언제였던가. 그중에서도 유성 지역의 칼국수 맛집을 찾아 나섰던 날,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한 끼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바로 ‘온천 손칼국수 쭈꾸미’. 간판에 적힌 이름만으로도 이미 온천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기대감을 안고 대기실을 나서다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 도착했지만 이미 가게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기 순번을 받으니 20팀 정도. 따뜻한 대기실이 있어 추위 걱정은 덜했지만, 20분 남짓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의 모습은 꽤나 분주했다. 하얀 간판 위로 ‘온천’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고, ‘칼국수’와 ‘쭈꾸미’라는 메뉴를 알리는 글씨가 그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선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편안한 조명 아래, 벽면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앉아 따뜻한 김이 나는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메뉴판을 훑어보니, 이곳의 시그니처인 ‘물총(동죽)조개 칼국수’와 ‘주꾸미 볶음’이 눈에 띄었다. 칼국수만으로는 아쉬울까 싶어, 두 가지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조합으로 주문을 마쳤다. 주문 후, 10분 남짓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칼국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면발의 쫄깃함, 국물의 깊이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커다란 그릇에 담긴 칼국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뽀얗고 맑은 국물 속에는 쫄깃해 보이는 면발과 싱싱한 초록의 파가 듬뿍 올라가 있었다. 그 위로는 조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그 푸짐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먼저 면발을 한 젓가락 집어 올렸다. 젓가락에 묵직하게 달라붙는 면발의 감촉이 예사롭지 않았다. 입안으로 가져가 보니, 씹을수록 고소한 밀가루 풍미가 느껴지면서도 전혀 텁텁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마치 ‘자가제면’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쫄깃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완벽한 면발이었다.

이어서 국물 맛을 보았다. 조개칼국수 특유의 시원함은 분명 느껴졌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깊고 폭발적인 맛은 아니었다.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랄까. 함께 간 일행은 대구의 유명 칼국수 집과 비교하며 조금 더 시원한 맛을 기대했다고 했지만, 나는 이 은은한 국물 맛이 오히려 좋았다. 맑은 국물은 면발의 풍미를 해치지 않고, 담백함을 더해주었다.
김치의 변주, 특별한 매력
이곳의 진가는 바로 겉에 있었다. 갓 담근 듯 싱싱한 겉절이가 함께 나왔는데, 그 빛깔이 남달랐다. 붉은 양념이 고춧가루 본연의 빛깔을 살리며 먹음직스럽게 버무려져 있었다.

한 입 맛보니,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실비김치’처럼 혀를 마비시킬 정도의 극강의 매운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순한 맛도 아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적당한 매콤함과 신선한 김치의 아삭함이 일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김치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김치가 칼국수와 만나니, 정말이지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김치 양념을 조금만 덜어 국물에 섞어 보았다. 그러자 맑고 담백했던 국물에 매콤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더해졌다. 마치 고급스러운 고추장으로 맛을 낸 듯한, 그러면서도 본연의 조개 맛은 잃지 않는 절묘한 조화였다. 맵찔이라고 자신을 칭했던 나조차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혹시 김치를 조금 더 주실 수 있나요?”
주저 없이 김치를 더 요청했다. 넉넉하게 가져다주신 김치를 듬뿍 얹어 칼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말아 입안 가득 넣었다. 쫄깃한 면발, 시원하면서도 매콤해진 국물, 아삭한 김치의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황홀경이 펼쳐졌다. 마치 천상의 맛을 맛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의 김치는 단순히 칼국수의 곁들임 반찬이 아니었다. 칼국수의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하나의 훌륭한 조연이자 주인공이었다. ‘매콤한 김치를 좋아하신다면, 칼국수 국물에 김치 양념을 조금 넣어 드셔보세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주꾸미 볶음의 화끈함
칼국수를 즐기는 동안, 함께 주문했던 주꾸미 볶음도 등장했다. 빨갛게 양념된 주꾸미와 아삭한 콩나물이 어우러져 매콤한 향을 풍겼다. 젓가락으로 주꾸미를 집어 맛보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있었다.

이 주꾸미 볶음은 밥과 함께 비벼 먹거나, 김에 싸 먹으면 더욱 맛있다고 했다. 콩나물과 함께 밥에 슥슥 비벼, 커다란 김에 싸서 한 입 가득 넣었다. 매콤한 양념이 밥알 사이사이 스며들고, 쫄깃한 주꾸미와 아삭한 콩나물이 씹히는 조화가 입맛을 돋우었다. 칼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화끈하게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맛이었다.
이곳의 ‘자가제면’ 철학이 담긴 쫄깃한 면발, 그 맛을 한층 끌어올리는 매콤한 김치, 그리고 화끈한 매력의 주꾸미 볶음까지.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한 끼 식사를 선사했다.
물론, 깨진 조개 껍질이 간혹 국물에서 발견되는 점이나, 참이슬 클래식이 없었던 점은 작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점들이 이곳의 맛과 분위기를 흐리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적인 부분들이 ‘정통’이라는 느낌을 더해주기도 했다.
온천을 즐기고 난 후, 출출한 배를 따뜻하게 채우고 싶다면, 혹은 매콤한 음식이 당기는 날이라면, ‘온천 손칼국수 쭈꾸미’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다음에 대전을 방문하게 된다면, 웨이팅이 조금 짧거나 없기를 바라며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 그날의 쫄깃한 면발과 마법 같은 김치의 조화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