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낡은 벽돌집의 정겨운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다집’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오래된 항구에 온 듯한 묘한 설렘이 밀려온다.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 안에서 풍겨오는 음식의 향기는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런 묘한 매력이 나를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조명과 나무 테이블이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테이블마다 정갈하게 놓인 놋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은 옛 정취를 더한다. 다른 손님들의 소곤거림과 함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은,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오늘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벽에는 오래된 메뉴판이 걸려 있다. 큼직한 글씨로 쓰인 ‘수중전골’, ‘낙지볶음’, ‘낙새볶음’ 등.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수중전골’이라는 낯선 단어가 유독 눈에 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1인 식사를 하려면 2인분을 주문해야 한다는 안내 문구를 보고, 이 메뉴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괜히 벽에 붙은 수조 사진을 보며, 오늘 내가 맛볼 신선한 해산물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주문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에 놋그릇들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한다. 밥공기, 숟가락, 젓가락, 그리고 작고 정갈한 찬그릇들. 갓 지은 듯 윤기 나는 흰쌀밥은 밥그릇 안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톡톡 터질 것 같은 밥알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맑은 국물을 머금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메인 메뉴인 수중전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놋으로 된 냄비 가득, 붉은빛 국물과 함께 싱싱한 조갯살, 통통한 낙지, 아삭한 양파, 그리고 투명한 당면이 조화롭게 담겨 있다. 그 위로는 갓 딴 듯 싱그러운 팽이버섯이 갓을 펼치고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낯선 메뉴였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스레인지 불이 켜지고, 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면서, 코끝을 간질이는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의 향이 퍼져나간다. 끓기 시작하면서 국물은 더욱 깊고 진한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맑고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이 느껴지는 국물. 개인적으로는 너무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의 국물은 그런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밥 없이도 그저 안주 삼아 술 한잔 곁들이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맛이었다.
수중전골 국물은 정말 끝내줬다. 마치 바다의 깊은 맛을 그대로 담아놓은 듯, 시원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특히 조갯살은 어찌나 신선하고 부드러운지,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왔다. 낙지는 쫄깃하면서도 연했고, 양파는 익으면서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했다. 투명한 당면은 국물을 머금어 더욱 풍성한 식감을 자랑했다. 함께 나온 팽이버섯의 향긋함도 국물과 잘 어우러졌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갈 뜨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주각’이었다.
낙지볶음도 궁금해서 주문해보았지만, 수중전골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낙지 자체는 좋았지만, 양파가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인지 다소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은 아쉬움은, 수중전골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온다면, 다른 메뉴도 좋지만 무엇보다 수중전골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이곳은 2차, 3차로 가볍게 국물에 한잔하기 좋은 곳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도 좋았지만, 밥 없이 그저 국물과 건더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마치 이곳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노포의 품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찬바람이 뺨을 스치자 오늘 맛본 수중전골의 따뜻한 국물과 깊은 풍미가 다시금 떠올랐다. 좁은 골목길, 낡은 간판,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보물 같은 맛. 시간을 초월한 듯한 이곳의 매력은, 분명 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날을 기다리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