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계남면, 산골짜기 숨겨진 보석 같은 이 식당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느낌, 딱 그 순간이었다. 장안산 자락 아래, 고즈넉한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마주한 ‘한정회관’이라는 이름 석 자.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끄는 붉은 간판, 그리고 그 앞에 힙스터 느낌 물씬 풍기는 노란색 입간판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었다.

사실 이곳을 오기 전, 잠시 들렀던 장수 CC 인근에서 ‘고독한 미식가’ 모드로 주변 식당 정보를 탐색하던 중이었다. 동네 주민에게 슬쩍 물어보니 “육개장 보신탕은 전성집, 돌솥비빔밥은 시골쌀밥집, 백반은 여기 한정회관”이라며 친절하게도 여러 옵션을 제시해주셨다. 하지만 나의 레이더는 망설임 없이 이 ‘한정회관’을 향해 있었다. 자매처럼 보이는 두 여사장님이 홀과 주방을 오가며 음식에 정성을 쏟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백반’이라는 단순하지만 깊은 맛의 향연을 기대하게 하는 단어에 이끌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조명의 온도,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음식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가게 안은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벽면에는 친절하게도 메뉴판이 걸려 있었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적힌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리 주물럭, 닭볶음탕, 홍어탕, 생선구이 등 익숙한 듯하지만, 이 산골 마을에서 어떤 맛을 낼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는 망설임 없이 6천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다. ‘고독한 미식가’의 그 마음처럼, 복잡한 메뉴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그 집만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잠시 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6천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푸짐하고 정갈한 한 상이 차려진 것이다. 마치 동네 맛집의 ‘갓성비’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반찬들이 식탁을 빈틈없이 채웠다.

이것이 바로 6천원의 마법인가. 갓 지은 밥 위에는 김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었고, 따뜻한 국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반찬들이 줄지어 있었다. 갓김치, 깻잎 장아찌, 멸치볶음, 시금치무침,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직접 담그셨다는 다양한 장아찌와 나물 무침들이었다. 간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맛. 마치 할머니가 해주시던 집밥 같은, 그런 편안함과 익숙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오리 주물럭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빨갛게 양념된 오리 고기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깻잎과 함께 볶아져 향긋한 냄새까지 더해졌다.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쫄깃한 오리 고기와 매콤달콤한 양념이 환상의 궁합을 이루었고, 씹을수록 풍미가 살아났다. 밥 한 숟가락에 오리 주물럭 한 점을 올려 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텐션이 확 올라가는 느낌, 제대로였다.

물론, 오리 주물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집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홍어탕도 빼놓을 수 없다. 약간 삭힌 홍어를 사용했다고 했는데, 비릿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은은하게 계속 당기는 중독적인 맛이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 뜨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미나리와 무, 그리고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져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홍어탕에 초고추장을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라고 하니, 다음 방문 때는 꼭 시도해봐야겠다.

반찬 하나하나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보통 식당의 백반은 메인 요리 서브라는 느낌이 강한데, 이곳의 반찬들은 각자 살아 숨 쉬는 듯한 존재감을 뽐냈다.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이것저것 맛보느라 젓가락질이 바빴다. 여사장님의 친절함은 기본이었고,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수고했다’는 말 대신, ‘맛있게 드세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여사장님께 장수 시장에 대한 정보를 여쭤봤다. 그러자 오히려 이웃 마을인 장계 시장을 가보라고 권해주셨다. 마침 그날이 13일, 장날이라 북적이는 시장 구경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식사 후,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대로 장계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의 활기찬 모습과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이곳 ‘한정회관’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정겨움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장수라는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정, 그리고 오랜 시간 변치 않은 맛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6천원의 백반 한 상에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추억과 푸짐한 인심이 녹아 있었다. 힙한 도시의 트렌디한 맛집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정겹고 맛있는 시골 백반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한정회관에서의 식사는, 그런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 경험이었다. 다음에 장수에 가게 된다면, 분명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때는 홍어탕과 라면사리까지 꼭 섭렵하리라 다짐하며, 맛있는 기억을 가슴에 새겼다.